5 views
<h1><strong>모조 라이선스를 샀던 그날 밤의 긴 호흡</strong></h1> <p>&emsp;&ldquo;실험 코드가 점점 무거워져서 이제는 로컬 머신으로는 도저히 못 돌리겠어.&rdquo; 연구실 슬랙에 이런 푸념을 던진 게 화근이었습니다. 후배가 &ldquo;그럼 CUDA 가속이 되는 클러스터 관리 툴 써 보시죠?&rdquo;라며 특정 유료 소프트웨어를 추천했거든요. 문제는 1년 구독료가 59만 원, 지금 제 잔액으로는 꿈도 못 꿀 액수였습니다. 공용 예산을 타려면 최소 보름은 결재 라인을 돌려야 했고, CVPR 데드라인은 열흘 뒤로 다가왔습니다.</p> <p>&emsp;그 즈음 구인 게시판과 할인 커뮤니티를 뒤적이던 제 눈에 &lsquo;연구기관 전용 영구 라이선스 85% 할인, 남은 슬롯 12개&rsquo;라는 게시물이 걸렸습니다. 작성자는 &ldquo;해외 전시 부스 해체 물량이라 직접 받은 남은 키&rdquo;라며, 결제만 하면 30분 내 라이선스 파일과 설치 가이드 PDF를 메일로 보내 준다더군요. 댓글을 보니 &ldquo;방금 입금 완료&rdquo; &ldquo;키 인증했습니다!&rdquo; 같은 짧은 글들이 줄지어 있었고, 작성자는 &ldquo;오늘 자정에 폴더를 폐쇄하니 서둘러 달라&rdquo;는 멘션까지 남겼습니다. 저는 늘 그렇듯 가격과 일정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판매자에게 1:1 메시지를 보냈습니다.</p> <p><strong>1막 ― 이상하게 급한 &lsquo;정품&rsquo; 판매자</strong></p> <p>&emsp;첫 대화부터 속도가 달랐습니다. 상대는 제 연구 주제를 묻더니 &ldquo;GPU 최적화 옵션은 추가 비용 없이 드리겠다&rdquo;고 달콤한 조건을 늘어놨습니다. 저는 &ldquo;사업자 등록증이나 인보이스를 받을 수 있나요?&rdquo;라고 조심스레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다소 장황했습니다. &ldquo;해외 전시 대행사가 중간에서 처리해서 서류가 복잡한데, 영수증은 엑셀로 커스터마이징해서 보내 드리겠다&rdquo;는 말이었죠. 정식 판매처라면 기본적인 세금계산서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lsquo;너무 자세한&rsquo; 변명이 경계심을 자극했습니다.</p> <p>&emsp;그러나 제 손목시계는 남은 실험 시간을 재촉했고, 슬랙 알림엔 &ldquo;모델이 수렴하지 않는다&rdquo;는 후배의 메시지가 쌓이고 있었습니다. 판매자는 최저가를 한 번 더 할인해 주겠다며 &ldquo;최종 8만 9천 원&rdquo;이라는 금액까지 제시했습니다. 한편으로는 &lsquo;연구실 사람들 인원수에 맞게 라이선스 수량을 늘려 받을 수도 있겠다&rsquo;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불안해졌습니다.</p> <p><strong>2막 ― 공문서처럼 생긴 PDF, 그리고 두 번째 이질감</strong></p> <p>&emsp;판매자는 &ldquo;신뢰 차원에서 키 파일 일부를 미리 보여 주겠다&rdquo;며 PDF 한 장을 보냈습니다. 헤더에는 소프트웨어 회사 로고, 시리얼 넘버, 그리고 &lsquo;Academic Lifetime License&rsquo;라는 문구가 깨끗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서명 칸엔 담당자 싸인이 흘려져 있었는데, 정작 날짜가 공란이었습니다. &lsquo;시리얼 넘버&rsquo; 20자 중 앞자리 8자만 검은 막으로 가려 둔 것도 수상했습니다. 추가로, PDF 메타데이터를 확인해 보니 작성 프로그램이 &lsquo;스캔&rsquo;이 아닌 &lsquo;Microsoft Word 2019&rsquo;로 표시돼 있더군요. 진짜면 최소한 스캐너 모델명이 찍혔을 텐데 말이죠.</p> <p>&emsp;&ldquo;혹시 데모 키 아닌가요?&rdquo;라고 다시 물으니, 판매자는 &ldquo;문서 포맷이 오픈라이선스라 스캐너 정보가 안 담긴다&rdquo;고 설명했습니다. 동시에 채팅방 상단엔 &lsquo;구매 대기자 3명&rsquo;이라는 알림이 떠서 결정을 재촉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브라우저 탭을 새로 열고 판매자가 준 라이선스 넘버 앞 8자를 검색해 봤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검색 결과가 없었습니다. 너무 멀쩡해서 오히려 검색되지 않는 걸까? 그럴 수도 있지만, 과거 진짜 인증 키 조각은 커뮤니티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의심은 거의 확신으로 변했습니다.</p> <p><strong>3막 ― 검증사이트 검색창이 뱉어낸 일치 자료</strong></p> <p>&emsp;마지막으로 의지한 곳은 역시 <a href="https://mtweek.com/">먹튀위크 먹튀검증</a>이였습니다. 저는 판매자 텔레그램 ID와 계좌번호 끝 네 자리를 입력했습니다. 결과 탭을 여는 순간, 일주일 전 &ldquo;소프트웨어 영구 인증키 할인&rdquo;이라는 같은 제목의 피해 제보가 화면을 덮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판매자가 보냈다는 &lsquo;워드로 만든 공문서&rsquo;와 서명 필체, 그리고 시리얼 넘버 패턴이 사진으로 비교되어 있었고, 피해자는 &ldquo;결제 후 설치 가이드 링크 접속 불가, 연락 두절&rdquo;이라고 적어 놓았더군요. 그 순간 &lsquo;8만 9천 원&rsquo;이라는 숫자가 연구비를 지켜낼 마지막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함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p> <p><strong>4막 ― 퇴치보다 예방</strong></p> <p>&emsp;저는 결제를 멈추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우선 판매자 계정을 채팅 앱에서 차단했고, 앱 내 신고 기능으로 채팅 전부를 첨부해 의심 거래로 등록했습니다. 이어서 게시글 URL과 먹튀위크 증거 링크를 플랫폼 고객센터에 보내 삭제 조치를 요청했습니다. 플랫폼 측은 몇 시간 뒤 &ldquo;제휴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판매처&rdquo;라며 게시글을 비공개 처리했습니다.</p> <p>&emsp;연구실 슬랙에도 간단한 보고 글을 남겼습니다. &ldquo;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대량 할인 글은 대부분 가품&rdquo;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먹튀위크 검색 방법을 캡처해 공유했죠. 후배들은 &ldquo;코드 부족해 죽겠는데 돈까지 날릴 뻔했다&rdquo;며 감사를 전했습니다.</p> <p><strong>5막 ― 돌고 돌아 얻은 결론</strong></p> <p>&emsp;결국 저는 렌더링용 워크스테이션 예약을 밤샘으로 늘리고, 학회 마감 전 주에 학교 예산으로 정품 1년 라이선스를 받았습니다. 가격은 59만 원이 맞았지만, 설치 직후 바로 GPU 연동이 해결돼 시간 효율은 훨씬 높았습니다. 무엇보다 카드 정보와 연구 데이터를 함께 걸고 모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컸습니다.</p> <p>&emsp;그날 이후 실험 로그 옆 메모장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p> <ol> <li>정가의 70% 이상을 깎은 &lsquo;영구&rsquo;는 대부분 가짜다.</li> <li>PDF 메타데이터만 확인해도 위조 여부를 상당 부분 가려낼 수 있다.</li> <li>판매자가 &lsquo;다른 고객이 기다린다&rsquo; &lsquo;타이머가 끝난다&rsquo;고 말하면 더 천천히 움직여라.</li> <li>먹튀위크 한 번 검색하는 데 드는 1분이 연구비 몇십만 원을 지킨다.</li> </ol> <p>&emsp;할인율이 클수록 클릭 수는 빨라지지만, 저 네 줄 덕분에 통장은 오늘도 평온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lsquo;초특가 영구 라이선스&rsquo;가 나타나더라도, 저는 결제 버튼보다 메타데이터부터 열람하는 연구 습관으로 제 자신을 지킬 것입니다.</p>